지나간 유흥, 남겨진 고요

한때 불야성이었던 거리,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가 밤을 지배하던 그 장소가, 이제는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다. 찬란했던 유흥의 흔적은 벽에 희미하게 남은 포스터나, 닫힌 셔터에 붙은 임대문의 종이 쪽지에 남아 있고, 그 자리에 남은 건 ‘고요’다. 오늘은 이 조용함이 왜 이렇게 깊고도 묘하게 다가오는지를 함께 이야기해보자.


그 밤들, 불이 꺼지기 전

누군가는 “젊음은 밤에 피어난다”고 했지. 불빛 아래 모인 사람들, 알코올이 흐르는 잔,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드는 음악까지. 유흥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,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의 공간이었어.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사람들의 작은 탈출구였지.

그 시절엔 밤이 기다려졌고, 그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‘오늘은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구나’ 하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어. 친구들과 웃고, 울고, 싸우고 화해하고, 그 모든 감정들이 뒤섞인 그곳은 사람 냄새 나는 ‘삶의 한 부분’이었지.


텅 빈 골목, 남겨진 시간들

그렇게 밤은 계속될 줄 알았는데, 어느 날부터인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어. 익숙한 간판이 사라지고, 항상 열려있던 문은 굳게 닫혔지.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은 유흥이라는 단어 자체를 부정적인 의미로 몰아넣었고, 그 뒤로 거리의 공기는 달라졌어.

유흥이 떠난 자리엔 이상할 만큼 고요한 바람이 불고 있어. 불 꺼진 간판 밑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도, 웃통 벗고 서있던 호객꾼도, 시끄럽게 울던 노래방 기계도 이젠 없지. 그 자리를 채운 건 낯선 정적이야.


고요는 무엇을 말해줄까?

사라진 유흥은 마냥 퇴색한 과거일까? 아니면 지금 이 고요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는 것일까? 사람 없는 거리에도 시간이 흐르듯, 고요는 또 다른 변화를 품고 있어.

이제는 텅 빈 클럽 자리엔 카페가 들어서고, DJ부스가 있던 자리는 전시 공간이 되었지. 한때 소음으로 가득 찼던 그 골목은, 묘하게 차분한 감성을 주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어. 마치, 너무 많은 걸 겪은 후의 사람처럼, 거리도 차분해졌다고 할까?


우리가 진짜 그리워하는 건

사람들은 종종 “그때가 좋았지”라고 말하잖아. 근데 가만히 보면, 우리가 진짜 그리워하는 건 단순히 술 마시고 놀던 공간이 아니라, 그 안에 있었던 관계, 대화, 감정 같은 것들이야. 유흥은 일종의 매개체였던 거지.

지금은 다들 조심스러워졌고, 약속 하나 잡는 것도 어려워졌지만, 그 시절의 마음만큼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있는 것 같아. 어쩌면 그 시절을 추억하며, 우리는 앞으로 더 따뜻하고 진심 어린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도 몰라.


그래서, 이 고요를 어떻게 할까?

고요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. 새롭게 문을 여는 소규모 공연장, 밤 늦게까지 문 여는 북카페, 조용히 와인 한 잔 할 수 있는 작은 바들. 모두 이 고요를 이용해, 또 다른 형태의 유흥을 만들어내고 있어.

소란스러웠던 과거가 있어 지금의 고요가 더 선명하게 느껴지고, 이 고요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감성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거야. 그건 더 이상 ‘불야성’은 아니지만, 더 깊고 묵직한 울림을 가진 형태일지도 모르지.


고요를 받아들이는 법

유흥이 남긴 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,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이야. “나는 어떻게 나를 풀어줄 수 있을까?”, “진짜 즐거움은 뭘까?”, “혼자여도 괜찮은가?” 같은 질문들이 이 고요 속에서 우리를 찾아오지.

그때를 그리워하되, 지금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. 그게 우리가 이 고요를 살아가는 방식일 거야. 어쩌면 지금의 고요는, 또 다른 유흥을 기다리는 숨고르기일지도 몰라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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